유럽 거대강입자가속기(LHC), 힉스 존재 규명 가능성

2010.12.29 00:00
가속기와 관련된 연구는 지난 110년간의 노벨물리학상 중 약 20%를 차지할 만큼 전세계 기초과학을 선두에서 이끄는 분야다. 가속기는 입자나 이온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게 만드는 거대실험장치다. 이를 통해 우주 초기의 비밀과 진화 과정을 밝히고, 바이오물질이나 신소재 등의 미시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 과학기술의 모든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기초과학 연구의 첨병인 ‘가속기’가 올해는 국내외적으로 특히 주목받았던 한 해였다. 그 중 전세계 입자물리학계를 놀라게 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미니 빅뱅’ 실험은 단연 백미였다. 국내에서는 국제과학비즈니즈벨트(과학벨트)에 들어설 ‘중이온가속기(KoRIA)’와 포항시에 세워질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국내 과학기술계의 화두였다. ● 초기 우주 밝히는 미니빅뱅 실험 성공 11월 7일 세계 물리학계의 눈은 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쏠렸다. 미니빅뱅 실험이 마침내 성공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는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이 일어난 직후 100만분의 1초까지의 우주 상태를 재현한 실험이었다. CERN은 이 연구에서 사상 최초로 납 이온을 가속해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태양 중심부 온도보다 100만배 높은 극초고온과 극초밀도 상태를 만들어냈다. 보름 뒤 영국 버밍엄대 데이비드 에번스 박사는 이 연구를 통해 137억년 전 빅뱅 직후의 우주 환경은 ‘쿼크-글루온 플라스마’라는 액체와 유사했을 거라고 발표했다. 다음날 롤프디터 호이어 CERN 소장은 “초기 우주는 액체와 비슷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완전한 액체였는지, 끈적거리는 액체였는지 그 성질은 향후 더 밝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CERN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한 후속 연구로 내년에는 8TeV(테라전자볼트·1TeV는 1조 eV)에서 양성자 충돌 실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유인권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등이 포함된 국제 연구그룹 ‘스타(STAR)’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확인하는 연구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3월 5일자에 발표한 바 있다. 12개국 500여 명의 과학자가 참여하는 스타 프로젝트는 미국 뉴욕 주에 위치한 브룩헤이번연구소(BNL)의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RHIC)’를 이용해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진은 이 실험에서 1000억 eV(전자볼트)의 에너지를 갖는 금 원자핵 두 개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시켜 태양 중심부 온도의 30만 배인 약 4조℃의 극초고온 상태를 만들었다. 이 역시 가속기 안에서 ‘미니 빅뱅’을 일으킨 것으로 연구진은 반입자로 불리는 반양성자, 반중성자, 반초입자가 합쳐진 ‘반원자핵(반초삼중수소핵)’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당시 유 교수는 “초기 우주가 액체와 유사한 상태였을 거라는 추측을 확인하는 연구”라고 설명한 바 있다. ● KoRIA와 4세대 방사광 가속기, 한국 기초과학 끌어올린다 한국도 LHC, RHIC 같은 중이온가속기를 차질 없이 만들어가고 있다. 일명 ‘KoRIA(Korea Rare Isotope Accelerator)’로 불리는 이 가속기가 완공되면 과학계는 물리, 화학, 지질학, 의학 등 거의 전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연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oRIA 건설에는 총 4600억 원을 투입해 2015년 완공 예정이다. 과학벨트의 핵심 연구시설이 될 KoRIA는 빅뱅 직후 수분∼수십 분의 우주 환경 재현은 물론 매우 희귀한 동위원소를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되고 있다. 지난 9월 29일에는 국내외 연구자 200여명의 연구결과를 모아 만든 구체적인 개념설계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가속기 개념설계의 총괄책임을 맡은 홍승우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지름 10m의 원형가속기와 길이 200m의 선형가속기가 결합하는 중이온가속기가 될 전망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가속기”라며 “원형가속기에서 만든 동위원소를 선형가속기에서 재차 충돌시켜 매우 희귀한 동위원소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존 주기율표에 없는 새로운 원자핵을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 일본은 이미 2004년 새로운 원자핵을 발견해 원소번호 113번을 달고 ‘Japonium’이란 이름을 붙인 바 있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4세대 방사광 가속기 건설도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연구소는 3세대 방사광 가속기를 보유하고 있다. 전자를 빛의 속도로 가속하는 길이 205m의 선형가속기동과 지름 450m의 원형 저장링동으로 이뤄진 이 가속기는 물리, 화학, 생명공학, 나노과학 등 기초과학과 반도체, 신약개발 같은 응용산업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1996년 가동 이후 네이처 표지논문 2편을 비롯해 1500편이 넘는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연구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4세대 방사광 가속기의 장점이 월등해 ‘제4세대’로 끌어올릴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4세대 가속기는 3세대 가속기보다 100억 배 밝은 빛을 1000조 분의 1초로 빠르게 낼 수 있다. 이에 아주 미세한 공간이나 극단적으로 빠른 세계를 연구하는 분야에 쓰인다. 가령 세포막 구조를 분자 수준까지 알 수 있고,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는 신약 개발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제4세대 방사선 가속기 건설에는 200억원이 투입되며 이르면 2015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 “내년 5월 국제학회에서 힉스 존재 등장할 수도” 내년에도 국내외 과학계는 가속기 연구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일 전망이다. 미국의 스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유인권 교수는 “내년 5월말 프랑스에서 열리는 쿼크매터(Quark Matter) 학회에서 유럽 LHC의 최근 실험을 근거로 한 놀라운 연구결과가 공개될 수 있다”며 “힉스의 존재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규명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힉스는 1964년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가 예측한 입자로 다른 입자가 질량을 갖도록 해주는 가상의 입자다. 전세계적으로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를 누가 먼저 찾을지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RHIC는 최근 10년간 200GeV(기가전자볼트·1GeV는 10억 eV)에서 원자핵 대 원자핵의 충돌 실험을 해 왔다. 유럽 LHC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양성자 대 양성자의 충돌 실험을 수행했다. 유 교수는 “최근 학자들은 두 실험을 비교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당황해하고 있다. 두 실험에 등장하는 원자핵과 양성자는 400배 가까운 질량 차이를 보여 가속기 내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보여야 하지만 실상은 매우 유사한 현상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올 11월 LHC의 또 다른 실험인) 납 이온을 가속해 충돌시킨 실험에 대해 현재 결과 분석중”이라며 “이 연구결과가 나오면 이해하기 힘들었던 최근 실험결과에 대한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힉스에 관한 새로운 연구결과는 LHC가 1년 넘게 수행한 양성자 대 양성자 충돌 실험 분석에서 나올 전망이다. 한편 한국의 KoRIA는 내년에 실제 가속기 제작을 위한 상세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과학벨트의 KoRIA 설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이달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내년도 예산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조직 운영 등을 위한 비용으로 100억원만 확정된 상황이다. 편경범 과학벨트 추진단장은 최근 “KoRIA 사업 등을 위해 추후 예비비를 추가로 요청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예산이 증액될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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