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트위터가 바꾼 인간관계 ‘빛과 그림자’

2010.09.09 00:00
[동아일보]

《 910명. 박화서 명지대 교수(57·여)가 6월경 페이스북에 가입한 지 두 달여 만에 생긴 ‘친구’ 수다. 이민행정학과 교수라 친구의 절반 정도는 해외 한인회와 국내 다문화 단체 인사다. 하지만 전혀 몰랐다가 친구가 된 이들도 많다. 이들과도 오래된 친구처럼 글을 주고받는다. 페이스북은 올린 글에 친구가 댓글을 달고 거기에 또 답글을 쓰는 ‘왔다 갔다 하는 맛’이 있어서 재미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페이스북이 한국 중년 아줌마의 벽을 부수는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친구는 같은 또래의 동성이었는데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 1990년대 후반 ‘아이러브스쿨’은 연락이 끊긴 학교 친구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고 2000년대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싸이월드는 오프라인 친구들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줬다. 하지만 스마트폰 열풍을 타고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아예 친구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SNS 이용자들은 어렵게만 느껴지던 직장 상사와도 일상적인 얘기를 나누고 만나보지도 못한 정치인, 스포츠스타,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의 일면을 쉽게 엿보고 있다. 새로운 매체를 통한 소통이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을 촉진하고 있는 셈이다. 7일 현재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용자는 각각 137만 명과 153만 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SNS가 새로운 매체로 자리를 잡고 의사소통을 촉진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인간관계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 상사도 ‘친구’ 회사원 김모 씨(32)는 조만간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을 만나러 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김 씨의 트위터 ‘팔로어(follower)’ 수는 97명. 그중에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작가 이외수 등 유명인사도 있고 김 씨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도 있다. 최근 사장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동시에 글을 올리자 김 씨는 사장에게 “어떻게 하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사장은 “방으로 놀러오면 가르쳐주겠다”고 답했다. 김 씨는 “진짜로 사장을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지만 얼굴도 자주 못 보는 회사 상사와 종종 얘기를 나누면서 부쩍 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문화 비교 연구의 권위자인 네덜란드 사회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권력 간격(power distance)’이 비교적 먼 위계질서와 권위를 중시하는 나라다. 권력 간격은 사회 구성원이 권력의 불공평한 배분을 인정하는 정도다. 권위를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권력 간격이 넓다. 그러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회사 임원이나 사장과도 온라인 친구를 하면서 권력 간격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로 유명한 두산의 박용만 회장이나 신세계의 정용진 부회장이 부하 직원들이나 고객과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누는 예는 이미 SNS 이용자들에게는 ‘고전’이 됐다. 지난해 스마트폰과 함께 사내 트위터인 ‘야머’를 도입한 하나금융그룹의 계열사 하나INS도 수직적인 조직 구조에서 수평적인 조직으로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 회사 방윤택 상무(50)는 야머 덕분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졌다고 한다. 그는 “의사결정은 여전히 팀장들과의 회의에서 내리지만 팀원들이 현재 업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실무진의 목소리를 바로 듣게 된 건 큰 변화”라고 말했다. ○ 하지만 인간관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SNS가 실제 인간관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수평적인 관계인 것 같지만 직장 상사는 상사일 뿐이고 부하 직원은 부하 직원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한림대 사회학과 이기홍 교수는 “SNS가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촉진하는 면이 있지만 이용자의 관계 자체가 변하는 건 아니다”라며 “SNS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SNS 이용자들이 실제로는 친하지 않은 상사나 유명인사와 일대일로 소통하고 그 사람의 개인적인 면을 보게 되면서 ‘가성(pseudo·가짜)의 친밀감’을 갖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이를 ‘디지털 스킨십’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팔로어 또는 ‘친구’와 뭔가 특별한 관계가 형성됐다고 생각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SNS 이용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누군가와 소통을 한다는 점에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유권자들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열광했지만 그 후 서서히 열정이 식은 것이 좋은 예다. ○ SNS 피로감 호소하기도 엮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SNS로 엮이면서 ‘SNS 피로’를 느끼고 있는 이용자도 늘고 있다. 회사원 이재연 씨(29·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릴 때마다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한다. 얼마 전 같은 부서 팀장이 친구로 등록된 뒤 부쩍 자신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경우가 많아서다. 지난주에는 별 생각 없이 “요즘 일이 많아 힘들다”는 푸념 섞인 글을 올리고 나서 팀장이 “뭐가 힘든지 내게 말해보라”고 물어와 놀라기도 했다. 이 씨는 “상사가 내 글을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글을 올리기 전 자극적인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회사 동료나 상관이 보면 안 될 것 같은 글을 올릴 때면 ‘읽기 권한’을 따로 설정하기도 한다. 아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ID를 복수로 만들어 놓고 온라인에서 일종의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직장 등 공적 인간관계가 아닌 나머지 인적 네트워크를 또 다른 온라인 계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직장 상사가 SNS에서 부하 직원에게 친구 신청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는 의견까지 나온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국내 스마트폰 열풍에 힘입어 지금은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결국 싸이월드처럼 프라이버시 문제가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벌써부터 트위터의 흔적을 지우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싸이월드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는 욕구 때문에 폭발적으로 이용자가 늘었지만 결국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겨 시들해졌다”며 “이번 SNS 돌풍이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우 동아일보 기자 sublime@donga.com 김상훈 동아일보 기자 sanhkim@donga.com 김상운 동아일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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