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펜로즈 계단에서 길을 잃다

2010.08.09 00:00
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인셉션’이 관객 300만 명을 넘기며 여름 극장가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는 그래픽보다 ‘현란한’ 스토리가 단연 압권이다. 무의식, 꿈, 꿈속의 꿈, 꿈속의 꿈속의 꿈 같은 복잡한 구성에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가 너무 어려워 두 번째 보면서 불현듯 “왜 내가 아까운 내 돈 내고 이렇게 고문을 당하고 있는 거지?”라고 신경질을 냈다고 털어놨다. 영화평을 할 안목이 없는 기자의 감상 소감은 건너뛰고 영화에서 본 인상적 장면 가운데 하나인 펜로즈 계단으로 올라서보자. 펜로즈 계단(Penrose stairs)이란 영국의 의학자 리오넬 펜로즈와 그의 아들 로저 펜로즈가 고안한 ‘3차원에서는 불가능하고 2차원에서는 가능한’ 계단이다. 사실 아들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 유명한데, 1970년대 스티븐 호킹과 함께 블랙홀 이론을 연구한 천재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 바로 그 사람이다. 지금 화면(2차원)에서 펜로즈 계단을 처음 들여다봤다면 뭐가 특이한 건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계단 한 쪽에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는 사람은 뭐지?’ 검지와 중지를 다리처럼 움직여 계단을 걸어가 보자. 계단을 오르거나 내리거나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몇 번 걸어보면 절망해 주저앉을 것이다. 계단은 높이가 다른 지점을 걸어서 올라가게 해주는 장치다. 그런데 한 사람은 올라가고 한 사람은 내려가는데 건너편에서 딱 마주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펜로즈 계단이 ‘3차원에서는 불가능하고 2차원에서는 가능한’ 이유다. 도대체 어디에 트릭이 숨어있는 것일까. 펜로즈 계단을 만들 순 없을까. ●차원 축소는 정보의 소실 펜로즈 계단은 계단을 오르다 왼편(물론 오른편도 상관없다)으로 90도 꺾어 다시 계단을 오르고 다시 90도 꺾는 과정을 반복해 4각형의 테두리를 만든다. 논의를 간단히 하기 위해 계단 하나의 면을 정사각형으로 했다. 위 그림의 펜로즈 계단을 하늘에서 본 모습(평면도)을 그려보자. 앉아있는 사람 왼쪽의 계단(1번으로 하자)부터 시작해 오르는 방향으로 계단을 하나하나 그려보면 사람이 앉아있는 마지막 계단(12번)에 이른다(그림 2-1). 그런데 위 그림에선 붙어있는 1번 계단과 12번 계단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펜로즈 계단을 3차원에서는 떨어져 있는 대상이 서로 닿아 보이는 특정한 각도에서 바라본 ‘허상’인 셈이다. 일몰 때 엄지와 검지 사이에 태양을 넣고 찍은 사진을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납작한 육면체 78개(계단 1번은 1개, 2번은 2개, …)만 있으면 펜로즈 계단을 만들 수 있을까. 아쉽게도 평면도에 따라 육면체를 배치한 뒤 ‘특정 각도’에서 봐도 펜로즈 계단은 안 나온다. 12번 계단의 기둥이 1번 계단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림2-2). 결국 12번 계단을 치운 뒤 ‘ㄱ’자 형태(그것도 1번을 가리지 않게 한쪽 면을 깎아 낸)의 계단 뚜껑을 11번 계단 끝에 고정시켜야 계단이 ‘연결’된다. 리얼리티를 좀 더 높여주려면 1번과 2번 계단 아래에 기둥을 더 붙여줘야 한다(그림2-3). 가능한 2차원을 만들기 위한 불가능한 3차원의 노력이 다소 구차하다는 생각도 든다. 펜로즈 부자는 왜 펜로즈 계단과 그 원형인 펜로즈 삼각형(원리적으로 마찬가지라 설명은 생략한다)을 고안했을까. 그냥 재미삼아? 펜로즈 계단을 보는 방향을 z축이라고 할 때 1번 계단 테두리의 한 점 O를 원점이라고 하면 좌표는 (0,0,0)이고 계단(뚜껑) 12의 한 점 P의 좌표는 (0,0,z)다(그림2-4). 그런데 z축과 나란한 방향에서 바라보면 z축이 압축돼 사라지면서 O나 P 모두 (0,0) 즉 한 점이 된다. 즉 바라보는 상의 3번째 차원인 깊이 정보가 일시적으로 소실되는 관점에 서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문득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평면적 사고’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처음 스쳐 지나간 인상을 끝까지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펜로즈 계단을 보다가 ‘내가 혹시 평면적 사고를 하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당신은 펜로즈 계단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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