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미디어아트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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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 너무 이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이름만큼 예쁜 얼굴? 그건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연두의 작업은 어여쁜 상상을 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처음 접한 그의 시각예술 작업은 사진이었다. 2001년 보라매 댄스홀 시리즈다. 누구는 퇴폐적이라고 했으나 중년의 남녀가 추는 춤사위의 뒷모습은 정겹고 따뜻했고 부러웠다. ‘정연두’를 검색해 보면 사직작가라고 나온다. 그런데 요즘 그가 하는 작업이 그를 사진작가라고 하기에는 조금 엉거주춤하다. 비디오 아티스트인지, 퍼포머인지. 누구는 그를 ‘미디어 아티스트’ 라고도 하던데. 그는 조소과를 졸업했다. 그가 조각을 하기는 했었나? 그는 사진을 찍기도 하고, 비디오를 촬영하기도 하고, 아예 감독노릇을 하기도 한다. ● 시네메지션 지난 봄 그는 ‘페스티벌 봄’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네메지션(Cinemagician)을 선보였다. 입장료를 받았다. 미술작가가 돈을 받고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공연이 열리는 서강대 메리홀은 만석이었다. 비도 많이 오는 날이었다. 도대체 미술작가가 무언가를 한다고는 하는데 뭘 하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일까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무엇을 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갔었습니다. 퍼포먼스를 하나 했었어요.) 공연장은 대형 무대를 가리는듯한 검은 커튼이 설치되어 있었고, 각종 오브제를 이리저리 옮기는 진행요원들이 부산스러워 보이게 일부러 움직이고 있는 듯 했다. 관객과 같은 방향으로 무대를 향해 카메라가 놓여 있었고, 효과음 연주자는 무대 오른편에서 준비 중이었다. 무대 위쪽으로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지정석으로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공연(?) 시간이 되자 작가가 그 빈자리에 앉는다. ● 메가폰을 잡다 모든 것이 준비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를 향해 소리 지른다. “액션! (Action)" 그 뒤 무대에는 한사람이 나와 연극을 하듯이 하나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 장면은 모두 카메라를 통해 대형스트린에 실시간으로 보여진다. 공연자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 그리는 데로, 지우면 지우는 데로 무대의 상황이 바뀌었다. 그 상황은 그대로 카메라를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지는 셈이다. 관객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데 동시에 그 제작과정까지도 같은 시공간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눈이 바쁘다. 무대 위의 공연자를 보고,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오렌지색 유니폼의 진행요원들을 보고, 스크린에 보여지는 장면을 본다. 공연이 끝나자 작가는 다시 일어나서 소리 지른다. “컷!(Cut)"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정리하고자 나의 뇌도 바삐 돌아갔다. 공연은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었다. 카메라의 앵글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은 이미 지정된 자리가 표시되어 있어 그 자리에 정해진 시간에 옮겨지고 치워졌다. 카메라 안의 공연자 뿐 아니라 모든 진행요원이 공연자였다. 그럼 작가는 무엇인가. 그는 공연 전체 중 딱 두 번 일어나 소리를 두 번 지른 것 말고는 관람객과 함께 앉아 자신의 공연을 관람했다. 헛갈린다. 어디까지가 작품이라고 정할 수 있을까. 공연과 공연이 녹화된 비디오. 이 사람은 연출가인가. 제작자인가. 이미 사진작가는 아닌 것 같다. ● 새로운 매체를 대하는 방법 정연두 작가의 행보를 보면 백여년전 사진기술이 세상에 나왔을 때 미술가들이 느꼈을 혼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을 사진이 대신하게 된 상황에서 당시 시각예술가들은 다른 길을 모색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상주의, 입체파, 초현실주의를 만날 수 있었다. 대단한 기술이나 비용이 들지 않고도 개인 영상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온갖 전자기기들이 넘치는 현시대에서 과연 시각예술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정연두는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미디어들이 날 선 기술로 나서지 않게, 작가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해내는 착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게 길들이는 조련사의 역할을 그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이 지나면서 ‘미디어 아트’는 자주 등장했다. 미술계의 미디어아트는 ‘어두운 조명 아래서 인터렉티브 기술 등 최첨단 영상기술을 사용하여 움직이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 정도로 이해되었다. 붓이 아닌 카메라로, 화판이 아닌 스크린에, 평면이 아닌 공간으로의 확장, 소리와 움직임이 동반되는 조형물이나 영상들. 이런 것들이 한데 묶여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는 구별되었다. (보통 미술 전시장은 밝은데 미디어아트 전시장에 가면 대부분 어두컴컴 합니다. 한번 가보세요~) 그런데 ‘미디어 아트’ 작업 중에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과 표현 방법이 조화롭지 않은, 마치 기름과 물과 모래가 뒤섞여 있는 것 같은 보기에 불편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어떤 분은 기술이 너무 앞서다 보니 그렇다고도 했었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이렇게 최첨단 과학기술이 예술활동에도 적용되는구나” 하는 감탄과 “복잡한 기계까지도 배워서 작품 활동을 하니 이중고겠구나”하는 안쓰러움이 대부분이었지만. ● 오래된 미디어 그러나 새로운 경험 그런 와중에 정연두의 작업은 마음이 편했다. 그 이유는 두가지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한 매채를 선택했다. 카메라. 더 이상은 없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진 찍기와 촬영하기가 그가 선택한 방법론이다. 인터렉티브라고 하면 그가 만들어 놓은 사직 찍기 캡슐에 들어가 그가 만들어 놓은 배경에 앉아 사진을 찍는 놀이 정도였다. 사진은 관람객이 가져간다. 두 번째는 매체의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드는 결과물에 담긴 과정은 참신하여 재밌다. 꿈을 현실로, 허구를 실제처럼 만들어 내는 작업이 그의 제작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자동차 정비공이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면 자동차 정비공인 주인공을 찍고 그 옆에 나란히 카레이서로 연출해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어디선가는 그를 ‘마법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시네메지션 작업도 마찬가지다. 연극 같은 무대 세팅을 관객이 직접 보는 시간 속에 영상을 만들어 진짜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과정이 작가와 관람객이 공유하는 경험 또한 시각 예술을 감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아예 이번에는 마술가가 퍼포머로 나섰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시네메지션을 감상하는 작가는 간간히 웃었다. 그도 자신의 작업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다음에는 어떤 경험을 만들어 내려고 저리 웃나. 정연두 작가의 웹 사이트 ※ 사진을 제공해 주신 정연두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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