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천광암]김치 세계화 도와주는 기무치

2008.04.03 09:31
지난달 17일 일본 도쿄(東京) 도심에 ‘소선재’라는 한식점이 문을 열었다. 35석 규모의 아담한 식당이지만 유력 일간지 도쿄신문이 ‘세계의 맛@도쿄’라는 고정코너에 탐방기를 싣는 등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꽤 화제를 모았다. 이 음식점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소선재의 이름과 조리법을 그대로 빌려왔다. 주인은 일본 70개 백화점에서 김치매장을 운영하는 ‘기무치 관(館)’의 오타 고지(太田浩次) 사장이다. 그는 한국 전통 가정식의 우수성을 일본인들에게 꼭 알리고 싶어 2년간 준비한 끝에 음식점을 냈다고 한다. 오타 사장은 한국 음식을 일본에 전파하는 데 각별한 열정을 갖고 있다. 열정이 없었다면 일본인들이 김치를 일부러 비하하고 기피하던 ‘암흑기’에 김치사업에 뛰어드는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업 초창기인 1980년대는 ‘김치 먹으면 바보 된다’는 말이 사실처럼 떠돌았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씁쓸한 기억이 하나 있다. 약 10년 전 그는 한국의 한 방송사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고 흔쾌히 응했다. 인터뷰 내용은 마침 그가 한국을 방문 중일 때 방영됐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잠시뿐이었다. 인터뷰는 기무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기 위한 소품이었던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반(反)기무치 정서가 팽배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김치의 영문 명칭과 국제수출규격을 놓고 한일 양국이 맞선 상황이었다. 기무치에 대한 한국 국민의 감정이 좋을 리 만무했다. 문제는 10년이 지난 지금이다. 한국은 1997년 김치규격분쟁에서 완승을 거뒀다. 8일 이소연 씨가 한국인 최초로 우주에 오르는 것과 동시에 김치는 ‘우주식품’으로 등극한다. 전 지구는 물론 우주에서도 김치가 종주권을 굳혔는데 기무치에 대한 반감은 여전하다. ‘원조(元祖) 프리미엄’을 위해 마케팅 전략상 김치와 기무치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기무치는 김치가 아니다’는 주문에 빠져드는 것은 손해다. 기무치는 김치를 일본인의 입맛과 일본의 기후특성에 맞게 변화시킨, 현지화의 산물이다. 기무치를 부정하는 것은 김치의 현지화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지화를 하지 않고도 김치가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좋은 사례가 최근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스시(초밥)다. 식품 전문가 이케자와 야스시(池澤康) 씨는 스시의 성공 원인을 분석한 그의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스시 붐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인이 먹는 스시는 압도적으로 마키(김을 이용해 밥 야채 게살 등을 만 것으로 캘리포니아 롤이 대표적)가 많다. 금액으로는 대략 80%가 마키다. 니기리 스시(밥 위에 생선을 얹은 정통 스시)를 먹는 미국인은 극소수다.’ 즉, 철저한 현지화의 산물인 캘리포니아 롤이 없었다면 스시 붐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니기리 스시도 엄밀히 말하면 원조나 정통과는 거리가 멀다. 스시는 동남아시아에서 생겨난 뒤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래됐다는 게 정설이다. 라멘,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돈가스, 덴푸라, 도리아, 고로케, 만주(饅頭), 요캉(羊羹) 등도 일본인들이 외래음식을 재창작한 것들이다. 음식에 관한 한 일본인들은 전통이나 격식에 거의 얽매이지 않는다. 이런 일본시장에서 김치가 더 깊숙이 파고들기 위해서는 원조나 전통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기무치 이상으로 현지화 노력을 해야 한다. 기무치는 ‘사이비 상품’이 아닌 ‘하위 상품’이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 김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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