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05.11 10:44
필립 K 딕 지음 | 이지선 옮김 | 집사재 | 283쪽 | 8000원글.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필립 K 딕? 웬만큼 열성적인 SF 독자가 아니라면 생소할 법할 이름이다. 그러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 ‘토탈리콜’의 원작자라고 하면 그 이름이 갖는 무게는 달라진다. 이 책의 표제작인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이 작가의 소설 중 세 번째로 영화화되는 작품.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톰 크루즈 주연한 이 영화는 6월 28일 미국에서 개봉돼 여름 극장가를 강타할 것으로 예고되는 화제작이다. 딕의 작품이 마이클 크라이튼 류의 영화원작 SF와 다른 점이라면, 그의 작품목록에서는 장편보다 중단편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영화화된 그의 작품들 역시 중단편이라는 점. 82년 54세의 나이로 타계해 최신의 과학 기술이론을 담아내지 못했음에도 계속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점 등이다. 그 밖에 아직 결정적인 차이가 남아있다. ‘블레이드 러너’(원제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를 상기해 보자. 복제인간들은 인간들보다 오히려 더 인간다운 반면, 실제 인간들은 그들에게 가차없이 폭탄을 발사하는 잔인성을 보여준다. 과연 태어났다고 해서 인간적이고, 만들어졌다고해서 비인간적인가? 아니라면 인간다움을 판별해주는 기준은 무엇인가? ‘토탈 리콜’(원제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 주인공은 화성으로 인공의 환상여행을 떠나지만, 독재를 분쇄하는 봉기에 휘말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환상-현실, 절대선-악의 구별은 모호해지며, 사건의 순서에 따른 인과관계도 뒤집힌다. 이 두 영화에서 보듯, 그의 작품을 특징지우는 가장 큰 개성은 미래 초기술사회가 불러올지 모르는 윤리의 붕괴, 공동선의 붕괴, 현실-환상과 인과관계의 붕괴에 대한 경고 또는 점검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일곱 편의 중단편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마이너리티…’의 주인공은 범죄예방국 국장인 앤더턴. 돌연변이로 예지능력을 갖게 된 세 명의 예지자들을 이용해 장래 범죄를 일으킬 용의자들을 미리 체포한다. 그 덕에 그의 관할구역 안에서 범죄율은 거의 0%. 어느날 그는 예지자들의 리포트에서 충격적인 보고를 받는다. 바로 자신이 곧 살인사건을 일으킬 장본인으로 지목된 것.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살인을 해야 할 아무런 동기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의 모험에 동참하는 독자는 ‘토탈 리콜’에서 맛본 것과 비슷한 혼돈에 빠져든다. ‘토탈 리콜’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붕괴되는 반면 ‘마이너리티…’에서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 초기술의 도입을 통해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윤리적 문제를 끌어오는 것도 앞서 영화화된 작품들과 같다. 과연 범죄를 거의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면, 아직 범죄를 일으키지도 않은 ‘용의자’를 그 가능성 만으로 격리하고 제거하는 것이 허용될 것인가? 마지막 책장이 덮인 뒤에도 질문은 미처 깨지 않은 꿈처럼, 바짓단에 들러붙은 껌 자국처럼 께름직하게 머릿속을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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