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물흐물 릴랙신 “긴장해라! 성인병”

2007.04.27 08:24
濠과학자 화학구조 규명 의약품 활용 길 터 “열려라, 참깨!” ‘출산의 동굴’ 자궁을 여는 주문이 있다면, ‘릴랙신(relaxin)’이란 생식호르몬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릴랙신은 쥐나 돼지 같은 동물이 새끼를 낳을 때 골반인대를 연하게 이완시켜 자궁경부가 열리게 만든다. 그래서 이름도 긴장을 풀어 준다(relax)는 의미에서 릴랙신이 됐다. 릴랙신은 자궁의 수축을 막으며 출산에 기여할 뿐 아니라 딱딱한 단백질인 콜라겐을 흐물흐물 풀어 없애며 뇌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한다. 생식호르몬 릴랙신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릴랙신을 이용한 심장질환약, 암치료제, 식욕억제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딱딱한 콜라겐을 풀어 암 치료 호주 멜버른대 하워드플로레이 연구소의 제프리 트리기어 박사는 생체에서 순수한 릴랙신을 뽑아 화학구조를 밝히고 이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75년 임신한 기니피그(모르모트)의 난소에서 이 호르몬을 발견하면서 연구를 시작해 30년 가까이 릴랙신 연구에 몸바쳐 왔다. 릴랙신은 아미노산이 54개나 붙어 있어 구조가 복잡한데, 트리기어 박사팀은 X선 장비와 핵자기공명(NMR) 장비로 구조를 밝히고 인공 합성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릴랙신을 이용한 새로운 의약품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릴랙신은 3종류가 있는데 릴랙신1, 2는 자궁뿐 아니라 심장이나 혈관의 조직을 이완시키는 약으로 개발되고 있다. 출산할 때 자궁의 긴장을 풀어 주는 것을 비롯하여 임신중독증을 막거나 출산 전에 자궁경관을 성숙시키는 약이 개발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콜라겐이 딱지를 만들어 상처를 보호한다. 하지만 심장, 혈관, 신장, 폐, 간 같은 내부기관에 콜라겐이 쌓이면 그 부위가 딱딱해지는 질환(섬유증)이 생긴다. 트리기어 박사는 “섬유증은 고혈압, 천식, 만성 신장질환과 연결된다”며 “릴랙신은 이런 질환을 치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워드플로레이 연구소는 미국 생명공학회사 바스메디컬과 함께 심장질환의 하나인 ‘울혈성 심부전증’을 치료하기 위해 릴랙신을 활용한 약품을 개발하여 현재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윤채옥 교수팀은 지난해 릴랙신 유전자를 이용해 암세포만 파괴하는 치료법을 개발했다. 윤 교수는 “암 조직에는 콜라겐처럼 세포를 딱딱하게 하는 물질이 많아 약물이 잘 퍼지지 않는다”며, “릴랙신 유전자를 넣었더니 종양 조직에서 콜라겐이 없어져 약물의 치료 효과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암 치료 약물(DWP418)은 이번 여름부터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뇌에서 나오는 물질 - 식욕억제제로 트리기어 박사는 “릴랙신은 연구하면 할수록 굉장한 물질”이라며 “2000년 세 번째인 릴랙신3를 놀랍게도 뇌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릴랙신3는 뇌에서 기억, 학습, 동기 부여, 식욕에 관련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난소에서 처음 발견된 릴랙신이 어떻게 뇌에서 발견된 걸까. 사실 뇌에서 나오는 릴랙신이 처음 생겼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뒤 이 릴랙신이 진화 과정에서 변형되어 다른 기관으로 이동해 현재 난소에서도 발견된다는 얘기다. 릴랙신의 변신은 응용 약물에서도 돋보인다. 트리기어 박사는 “릴랙신3를 뇌에 많이 투여하면 음식을 많이 먹어 살이 찐다”며 “현재 릴랙신3의 작용을 막아 식욕을 억제하려는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릴랙신을 토대로 한 식욕억제제 개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는 “난소에서 나오는 릴랙신을 분석하는 데 20년 걸렸지만 뇌에서 나오는 릴랙신은 게놈지도 덕분에 20분 만에 분석했다”며 “앞으로 릴랙신을 이용한 먹는 약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대 생명공학과 박윤경 교수도 하워드플로레이 연구소의 릴랙신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인공 릴랙신에 있는 나선구조를 조사해 항생 작용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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