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믿지마

2007.04.10 17:42
제주도에 가면 ‘요술도로’ 또는 ‘도깨비도로’라고 불리는 길이 있다. 보기에 분명히 오르막인데 구르는 물체를 놓아두면 오르막을 올라가는 것 같이 보여 붙은 이름이다. 그 이유는 주위 환경에 의한 시각적 혼선에서 비롯된 ‘착시’ 때문이다. 주변의 나무들이 자란 방향을 보고 오르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경사도 0.9 정도의 내리막인 것이다. 이를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도로의 사진을 찍은 후 포토샵 같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주변 경관을 차례로 없애면 도로가 완만한 내리막인 것을 알 수 있다. 보는 것도 뇌의 복잡한 인식작용 인간의 지각은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의 5가지로 구분돼 있다. 이들 감각기관을 총체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곳은 뇌이며, 뇌는 신경조직을 통해 감각기관과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신경조직은 크게 12개로 구분되며, 이 중 8개가 눈으로 연결돼 있다. 시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 눈 뒤쪽에는 망막(retina)이 있다. ‘그물’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 ‘레투스’(retus)에서 온 말이다. 망막은 영화관의 스크린과 비슷하며 눈으로 들어온 빛이 선명한 이미지를 맺는 곳이다. 빛에 민감한 특수한 신경세포가 망막에 맺힌 이미지를 감지한다. 빛의 자극을 받은 신경세포들이 전기신호를 생성하면 그 전기신호가 뇌까지 연결돼 있는 신경세포로 전해진다. 사람의 눈을 종종 카메라에 비유하곤 한다. 카메라 렌즈처럼 눈의 수정체가 거꾸로 된 상을 망막에 맺기 때문인데, 시각체계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면 이 비유가 적절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각체계는 카메라 렌즈 같은 단순한 2차원 상이 아닌 3차원 지각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시각체계의 인지적인 기능을 대변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점점 접근해올 때 실제로 우리 망막에 맺히는 상의 크기는 증가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인지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갔을 때 망막에 도달하는 빛의 강도는 몇천배로 감소하지만,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도 하얀 윗도리나 빨간 바지를 뚜렷하게 구별해낼 수 있다. 따라서 시각체계는 카메라처럼 단순한 상의 기록이 아니라, 망막에 맺히는 순간적인 빛의 패턴을 논리적이고 견고한 3차원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창조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최근의 지각에 관한 견해는 독일어로 ‘구성’ 또는 ‘형태’를 뜻하는 ‘게슈탈트’(Gestalt) 학파의 이론에서 유래했다. 게슈탈트 학파는 우리가 본다는 것은 단순히 보고자 하는 대상물의 성질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물과의 전후관계와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동질성과 근접성 실험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여러 개의 점이 일률적으로 배열돼 있다면 우리는 같은 확률로 행이나 열이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다. 만일 각 행의 점이 동일한 색상을 띄고 있다면 우리는 열보다는 행의 패턴을 인지할 확률이 높다. 마찬가지로 각 행의 점들이 열의 점보다 서로 좁게 배열돼 있다면 우리는 좀더 쉽게 행의 패턴을 인지하게 된다. 눈도 착각한다 착시란 실제 지각되는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눈으로 느낄 때 대상물의 크기·형태·빛깔 같은 객관적인 특성과 눈으로 본 특성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착시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극을 주의 깊게 관찰하더라도, 지각이 잘못됐음을 알더라도 계속 잘못된 채로 지각되는 본질적인 현상인 것이다. 착시는 우리 뇌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지식이나 생각을 감각정보에 적용하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우리는 대상물의 크기를 대상물이 존재하는 주위 배경과 비교해 판단한다. 즉 서로 다른 거리에 존재하는 두 대상물의 크기를 비교할 때, 각각의 대상물을 직접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는 주위 배경과 비교해 판단한다. 또다른 예로 그림자에 의한 형태 인식과정이 있다. 원 위에서 빛이 비치고 있다면 원을 볼록한 형태로, 반대로 밑에서 비치고 있다면 오목한 형태로 인식한다. 이것은 우리 뇌가 자연에서처럼 광원이 하나라는 가정을 하기 때문에 비롯된다. 착시의 원인은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까지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은 ‘학습에 의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착시에는 기하학적 착시, 다의도형 착시, 역리도형 착시, 가현운동, 음영대비에 따른 착시, 요구나 태도에 의한 착시, 달의 착시 등이 있다. 기하학적 착시란 크기(길이·면적)·방향·각도·곡선 등 평면도형의 기하학적 관계가 객관적 관계와 어긋나게 보이는 착시현상이다. 착시도형은 보통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심리학 분야에서 막대한 공헌을 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뮐러-라이어 도형에서는 동일한 선분 2개가 화살표 머리의 방향 때문에 길이가 달라 보인다. 이것은 뇌가 형태를 크기의 잣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에빙하우스 도형에서는 원들로 둘러싸인 중앙의 원들은 실제로 같은 크기지만 큰 원들로 둘러싸인 것이 더 작아 보인다. 폰조 도형에서는 2개의 수렴하는 선 내부에 길이가 같은 두 선분을 놓으면 뒤에 있는 것이 더 길어 보인다. 이것은 원근에 의한 효과다. 자스트로 도형에서는 위·아래가 똑같은데 아래쪽이 더 크게 보이며 분트 도형에서는 두 평행선이 굽어 오목렌즈 모양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기하학적 착시는 규정조건과 요인이 다양하고 복잡해 현재까지는 타당한 설명이론이 확립돼 있지 않다. 다의도형 착시란 동일한 도형이 2종류 이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상과 배경의 이분법 원리로 설명되는데, 대상에서 한 부분이 관심의 초점으로 선택되면 나머지는 배경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루빈의 유명한 ‘잔과 얼굴’이라는 그림에서 얼굴과 흰색 꽃병 2가지 상이 보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역리도형 착시란 모순도형 혹은 불가능도형을 말한다. 펜로즈의 삼각형처럼 부분적으로 보면 가능한데, 3차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도형이다. 가현운동이란 영화처럼 조금씩 정지한 영상을 연달아 제시하면 연속적인 운동으로 보이는 현상을 가리키고, 음영대비에 의한 착시란 주위 밝기에 따라 중앙 부분의 밝기가 반대 방향으로 치우쳐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요구나 태도에 의한 착시란 배가 고플 때 다른 그림을 음식물 그림으로 잘못 보는 현상을 가리킨다. 달의 착시란 달이 하늘 높이 떠있을 때보다는 지평선 가까이에서 더 커 보이는 것으로 그 원인이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논문은 달의 착시현상은 인간의 뇌가 지평선 근처의 달이 하늘 높이 떠있는 달보다 더 멀리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지평선 근처의 달이 하늘 높이 떠있는 달보다 멀리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은 작아 보인다’는 상식을 보완하려는 작용으로 달이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기하학적 착시의 일종인 폰조원근착시와 비슷한 현상이다. 세로선 무늬가 날씬해 보이는 이유 착시현상을 실생활에 응용한 대표적인 예가 의복의 선 배열에 따른 착각현상이다. 옷의 선은 시선을 끄는 힘을 갖고 있어 우리 형체를 실제보다 더 크거나 작게, 또는 뚱뚱하거나 마르게 보이게 한다. 즉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직선은 시선을 끌어내려 길이를 강조함으로써 더 크고 더 마르게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또한 수평선은 시선을 좌우로 움직이게 해 면이 넓어 보이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아 보이는 효과를 낸다. 그러므로 상반신에 수평선이 있을 때는 좁은 어깨가 넓어 보이며 도리어 엉덩이는 작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역으로 수직선이 많아지면 시선을 수직으로 끄는 힘이 생겨 길이가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사선은 시선이 모이는 쪽은 좁아 보이고 퍼져나가는 쪽은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으므로 대각선의 각도가 급하지 않은 옷을 입었을 때는 날씬해 보인다. 수직선과 대각선이 합쳐진 옷은 시선이 위로 옮아가 키가 커 보이고 날씬한 몸매로 보이게 한다. 시각정보는 대뇌피질의 여러 부분에 의해 분석된다. 최근의 연구들로 망막의 각 부분이 대뇌 선조피질의 특정 부위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선조피질 이외의 부분에서도 시각정보가 분석된다. 선조피질 이외의 각 부분이 형태, 색깔, 깊이, 운동성 등 각각 다른 종류의 시각정보 분석에 관여함이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뇌 신피질의 50%가 넘는 부분이 시각정보를 분석하는데 사용된다는 사실은 놀랄 만하다. 볼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시각체계는 망막에서 뇌의 각 부분으로 평행경로를 따라 구성돼 있는데, 아래관자경로는 무엇을 보는가, 뒤관자경로는 어디를 보는가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같은 시각경로는 서로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위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해 단순한 ‘보는 것’이 아닌 ‘지각’을 창조한다. 이렇듯 시각이란 카메라처럼 ‘본다’라는 단순한 작용이 아니라 뇌의 복잡한 분석과정을 통한 고도의 ‘인식작용’인 것이다. 끝으로 1966년에 발표된 리차드 그레고리 박사의 ‘눈과 뇌’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우리는 본다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 시각체계라는 것에 우리가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우리는 눈의 망막에 조그마한 뒤집힌 상을 맺고 대상물 주변의 구별된 물체들을 본다. 이런 망막의 단순하게 보이는 자극패턴을 통해 우리가 대상물이 속해 있는 세계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장성호 교수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신경생리학과 생물물리학 연구로 199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 세포생물학과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친 후 2002년부터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신경세포가 발생, 성장하는 과정과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는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 중이다. 인라인스케이트와 스키를 즐기는 장 교수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는 젊은 뇌과학도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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