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는 분노 무감각한 폭력 ‘반사회적 인격 장애’

2007.01.15 08:40
《김모(23) 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짱’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야단치는 선생님께 고함을 지르며 욕을 해 퇴학당했다. 성인이 돼서는 일정한 직업은 없었지만 잘생긴 외모와 현란한 말솜씨로 주위에 여자가 많았다. 여자 친구들의 카드를 빌려 쓰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맘에 안 들면 때리기 일쑤였다. 어머니에게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김 씨는 삼촌들에게 이끌려 강제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요즘 김 씨처럼 폭력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멀쩡해 보이던 이웃 남자가 갑자기 부모를 폭행하거나 별 말썽 없이 지내던 자녀가 어느 날 동급생을 집단 폭행한다. 부부 싸움을 하다가 임신한 아내가 유산할 정도로 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과급을 안 준다는 이유로 사장을 폭행하는 노조원들도 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사람들은 ‘패륜아’로 치부됐다. 사소한 이유로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단순히 성격이 과격한 걸까. 이런 사람 중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안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반사회성은 어려서부터 형성돼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는 남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한다. 미성년자는 사회성이 충분히 발달하는 시기가 아니어서 인격 장애자로 판정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18세 이상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중 15세 이전부터 같은 성향을 보였다면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다. 일반인은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불안해하거나 우울해하지만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는 죄책감, 불안감, 우울감이 거의 없다. 40대 중반 최모 씨는 툭하면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사소한 농담에도 자존심을 상해 분노를 터뜨린다. 그는 술만 마시면 시비를 걸고 음주운전을 수시로 한다. 최 씨는 기분이 아주 좋다가 급격히 우울해지는 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라고 모두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50대 도박중독자인 이모 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내가 친정에서 빌린 아들의 대학등록금까지 도박으로 날렸다. 이 씨는 “조금만 노력하면 몇 배를 벌 수 있을 것 같아 그랬다”며 “가족에게 미안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가족과 헤어졌다. 27세인 한 남성은 상습적으로 교통사고를 가장해 보험금을 타내다 법망에 걸렸다. 그는 경찰서에서 “큰 보험사들이 가난한 내게 돈을 좀 주면 어떠냐. 나도 계속할 생각은 없었고 이번에만 한 건 크게 해서 제대로 살아보려 했다”며 오히려 화를 냈다. 유전과 환경…원인은 복합적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원인은 뚜렷이 알려져 있지 않다. 유전적인 성향, 가정환경, 기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정도만 밝혀졌을 뿐이다. 충동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이 질환에 걸리기 쉽다. 충동성을 부추기는 남성호르몬이 많거나 기억력, 사고력, 감정을 컨트롤하는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다. 미국에선 폭력전과자들이 가석방을 조건으로 남성 호르몬 억제제를 맞기도 한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는 스스로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남에게 괴롭힘을 주고 권익을 침해해도 자신은 불편함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변 사람의 조치가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구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다면 병원에 데려가는 게 좋다.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는 기분안정제 등을 처방받으면 분노 성향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우울과 불안이 겹쳐 있을 경우 항우울제, 항불안제가 도움이 된다. 권위 무시하는 사회가 폭력을 북돋워 사회규범이란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60년대만 해도 길거리에서 남녀가 키스하는 행위는 ‘범죄’였지만 요즘은 ‘낭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최근 거칠어진 사회 분위기는 권력 상층부가 스스로 권위를 부정하면서 사회적으로 ‘해도 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가 점점 무너지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류인균 교수는 “급격한 가족 해체, 각종 폭력 미화 드라마, 부자에 대한 증오나 적개심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사람들의 반사회성을 부추긴다”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선 적절한 규범과 권위가 있어야 하며 이를 서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움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 영동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찬형 교수, 강동성심병원 정신과 한창환 교수)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윤보라(이화여대 약대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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