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으로 과거 못 바꾼다

2007.01.09 21:55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이 언젠간 타임머신이 발명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믿음엔 누구나 쉽게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깔려 있다. 시간여행이 정말로 가능한가. 이 해답을 쥐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타임머신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아인슈타인이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건 그가 발표한 상대성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영화에서 잘 알려진 타임머신은 SF 영화의 전유물이지만 원래는 소설가들이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기법으로 도입한 것이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이다. 소설의 주인공 스크루지 영감은 타임머신이라는 복잡한 장치 없이도 자신의 미래를 미리 가 본 행운의(?) 주인공이다. 조지 웰스가 1895년에 발표한 소설 ‘타임머신’에서 그가 고안한 작품 속의 타임머신 장치는 오늘날 시간여행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타임머신은 물론 조지 웰스가 처음은 언급한 건 아니다. 1888년에 미국의 에드워드 벨라미는 소설 ‘회고 : 2000년에서 1887년까지’에서 현재 시점에서 본 과거나 미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톰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핀’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이 1889년에 발표한 소설 ‘아서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도 같은 소재의 시간여행을 한다. ‘아서 왕궁의 코네티컷 양키’는 19세기말 미국의 한 기술자가 정신을 잃은 뒤 다시 깨어나 보니 영국의 아서 왕 시대로 날아갔다는 특이한 소재로 봉건제와 지배계급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그러나 이 소설들에서는 조지 웰스의 『타임머신』에 필적할 만한 과학적인 지식은 찾아볼 수 없다. 타임머신이 실제로 가능하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유명한 역설이 등장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태어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를 죽인다면 당신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어머니를 살해하면 당신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존재하지 않게 되면 과거로 돌아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일도 저지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를 죽이지 않는 한 당신은 계속 존재한다. 다소 유쾌하지 않은 가설이지만 '타임머신'이라는 아이디어가 세상에 발표되었을 때의 문제점을 이보다 정확하게 지적한 것은 없다. 영화 ‘백 투 더 퓨처’는 바로 이런 모순점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 것이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의 1편에서 주인공 마티는 타임머신을 만든 과학자 브라운 박사에 의해 자신의 부모가 결혼하기 전의 과거로 간다. 그곳에서 마티는 어릴 적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가 마티를 좋아하면서부터 일이 꼬인다. 어머니가 마티의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으면 마티 자신은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마티가 자신의 어머니가 될 사람과 결혼해 자신이 태어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에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티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결혼해 자연스럽게 인과율의 모순점을 해결했지만 이러한 질문은 타임머신 연구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 상황을 좀 더 쉽게 말한다면 ‘존재한다면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으려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에 태어난 한국의 천재과학자 고길동은 2050년에 불가능하다고 학자들이 말한 타임머신을 드디어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2025년으로 돌아가 아직도 대학원생인 젊은 자신에게 타임머신 제작법을 알려준다. 이 제작법을 전수받은 그가 수많은 난관을 이겨가면서 25년 만에 타임머신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타임머신의 독창성은 시간여행의 패러독스 속으로 사라진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견해다. 타임머신을 개발한 과학자가 2025년으로 돌아가 젊은 자신에게 제작법을 가르쳐 준 것이기 때문에 2050년에 개발하게 될 타임머신은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2050년에 타임머신을 개발한 과학자는 단 한 명의 한국인 고길동일 수밖에 없으므로 10년 전 그에게 제작법을 제공한 타임머신의 최초 개발자 역시 그 아이디어를 독창적으로 생각해 낼 수 없다. 이 같은 패러독스는 시간여행 자체가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예로서 거론된다. 타임머신에 관한 역설은 타임머신이 원천적으로 가능해서는 안 된다는 실망스러운 결론에 도달하는데 여기에서 유명한 '쌍둥이 형제의 패러독스'도 등장한다. 쌍둥이 패러독스의 답은 매우 빠른 우주선을 타고 출발한 형이 우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아우보다 형 쪽이 젊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에 대해 읽은 사람은 쌍둥이 형제의 패러독스 정도는 이미 숙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상술하지 않는다. 타임머신이 영화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타임머신이 불가능한 이유로 스티븐 호킹은 다음과 같은 철학적인 설명을 했다. 역사가 바뀌지 않도록 시간 순찰차가 언제나 감시하고 있는데 자연계에도 시간순서보호국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타임머신은 시간의 본성을 어기는 것이므로 이 같은 상황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보다 쉽게 풀이하면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르듯이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이다. 즉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만 향한다는 뜻이다. 아직까지 시간이 미래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역류한 예는 없었다. 따라서 어떤 기계를 만들더라도 이러한 시간의 비가역성을 바꾸어놓을 수 없으므로 타임머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은 바꾸지 못한다 어찌어찌 과거로 여행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과거에는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백 투 더 퓨처'에서처럼 마티가 어머니가 될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싶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려 해도 총알이 빗나가든가 누군가가 대신 맞아 주어 그 일은 결코 성공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2001년에 H. G. 웰스의 증손자인 사이먼 웰스가 감독을 맡은 '타임머신 2'에서도 이런 가설을 채택한다. 주인공 하디건은 타임머신을 만들자마자 몇 년 전에 공원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한 약혼자 엠마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가 과거로 돌아가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녀에게 꽃을 사주는 사이 그녀는 차에 치여 죽는다. 약혼자 엠마가 계속 죽자 엠마가 죽는 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과거를 바꿀 수는 있지만 최종적인 결과 즉 엠마를 살려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미래로 방향을 돌린다. '프리퀀시(Freqency)'도 이 같은 모순을 다룬 영화다. 존 설리반은 1969년 10월 12일의 브룩스톤 화재로 소방대원이었던 아버지를 잃고, 1990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경찰이다. 아버지 기일 하루 전, 폭풍이 몰아치는 날에 존은 아버지가 쓰던 낡은 햄 라디오를 발견하고 이를 튼다. 순간적으로 전기가 통한 후 그는 1969년도 월드 시리즈를 기다리는 한 소방대원과 무선 통신을 하게 되는데, 그는 바로 자신의 아버지 프랭크(데니스 퀘이드)다. 30년의 시간을 건너뛴 부자간의 대화에 존도, 그의 젊은 아버지도 처음에는 모두 믿을 수 없어 하지만 이내 존은 자신이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간단하게 말해 존은 아버지에게 프룩스톤 화재사건을 경고함으로써 아버지를 구한다. 그러자 1999년 10월 12일, 존은 이제 자신의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이 중년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가 살아있음으로 다른 일들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버지가 살아있음으로서 미해결의 연쇄살인이 일어나는데 희생자 중에는 잔인하게 살해당한 존의 엄마도 있다. 이제 아버지 프랭크와 존은 3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무선통신을 계속하면서 살인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과거에 이미 일어났던 사건을 시간여행으로 바꿈으로써 미래가 바뀐다는 것은 타임머신이 갖는 가장 큰 덕목 중에 하나다. 그런데 시간여행을 하더라도 과거의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거나 이미 일어난 사건을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는 유쾌하지 않은 결론에 도달한다. 즉 이러한 생각은 타임머신의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인류의 모든 과정이 이미 결정돼 있다는 운명결정론에 빠지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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