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봉호]인터넷 실명제로 댓글 문화 바꾸자

2006.01.24 08:56
임수경 씨 아들 사망 기사에 욕설 ‘댓글’을 단 25명이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 한다. 늦었지만 당연하다. 우리 인터넷 문화의 심각한 병 하나를 고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댓글은 인터넷이 제공할 수 있는 혜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신문, 방송, 잡지 같은 대중매체는 정보 제공자의 의견이 일방적으로 전달될 뿐 독자나 시청자의 의견이 표현되기 어렵다. 그러나 인터넷은 공개적인 토론장을 열어 주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댓글이란 형태로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어서 쌍방향 여론 형성 기능이 강하고 민주주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것에도 티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티가 자라서 전체를 타락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댓글 문화가 바로 그런 경우다. 많은 댓글은 건전하게 비판적이고 성숙한 여론 형성에 긍정적으로 공헌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미꾸라지들도 지나치게 많아 여론이 왜곡되고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댓글에서처럼 거친 언어가 공개적인 공간에서 마구 사용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제어되지 않은 감정, 숙고되지 않은 편견, 다른 의견에 대한 증오감 등이 원색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로서의 예의나 염치, 민주사회에서 기본적인 공정성이나 합리성은 뒤로 밀리고 인터넷이란 도구를 통하여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행사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와 형식적 평등주의만 남용되어 공론의 장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 신장과 민주적인 공론 형성에 공헌할 것으로 기대했던 인터넷 댓글이 오히려 여론을 왜곡하고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댓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일생 동안 욕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으로선 생욕을 퍼붓는 댓글 때문에 글을 쓰고도 그 사이트에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다. 심한 욕을 먹으면 글 쓸 용기가 꺾이고 불필요하게 조심스러워질 것 같아서다. 같은 이유로 댓글 달기도 주저한다. 몇몇 폭력배가 설쳐 대는 바람에 다수의 토론자들이 숨을 죽이는 형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론의 장이 파괴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개인이나 조직이 엄청난 심리적 고통과 억울한 수모를 당하는 것이다. 오죽 견디기가 어려웠으면 임수경 씨가 모욕적인 댓글을 단 사람들을 고발했겠는가? 인터넷은 다른 어느 공간보다 더 공개적이고, 비록 물리적인 위해는 가하지 않더라도, 인격적 모독과 사회적 명예훼손은 다른 어느 장소에서보다 더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다. 다른 형태의 모욕이나 명예훼손이 제재를 받는다면 댓글을 통한 그런 범죄도 마땅히 처벌되어야 한다. 타인에게 부당한 해를 가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느 사회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 법적 제재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인터넷 실명제’다. 우리의 댓글 문화가 이렇게 황폐해진 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독특한 ‘부끄러움의 문화(shame culture)’ 때문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점잔을 부리지만 혼자 있거나 익명성이 보장되면 어떤 야비함이나 부끄러움도 감행하는 경향이 다른 사회에서보다 상대적으로 강하다. 옛 선비들이 ‘혼자 있을 때일수록 행동을 삼간다’는 신독(愼獨)의 덕을 가르쳤지만 체면과 외식을 강조하는 문화적 전통에선 효력이 별로 없었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에서와는 달리 모든 누리꾼이 자신의 실명과 정체를 분명히 노출한 채 댓글을 달도록 해야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표현 방식도 조심할 것이다. 댓글의 언어폭력을 막아야 진정한 언론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이 보호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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