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아름다운 배신 - ‘우주전쟁’ 7일 개봉

2005.07.07 08:36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액션 블록버스터 ‘우주전쟁’은 어둡다.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애나 존스’나 ‘쥐라기 공원’ 같은 정통 오락 영화를 기대한 사람에게 이 영화는 ‘배신’이다. 영화는 원작인 H G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1898년)을 시대만 바꿨을 뿐 충실히 따랐다. 어느 날 하늘에 거대한 소용돌이 구름이 생기고 번개가 친 뒤 ‘세 발 달린 살인 기계(트리포드)’가 땅 속에서 솟아나와 인간을 살육하기 시작한다. 항만의 대형 기중기 운전수인 이혼남 레이(톰 크루즈)는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를 데리고 피란길에 오른다. 그들 앞에 ‘인간 지옥도(地獄圖)’가 펼쳐진다. 영화는 전율을 일으키는 도입으로 시작하지만 스크린에 몰입하게 하는 ‘아드레날린의 롤러코스터’는 없어 허전하게 끝난다. ‘조스’(1975)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만들었던 스필버그 감독이 왜 자신의 공식을 따르지 않은 것일까. 스필버그 감독의 시점으로 ‘배반의 이유’를 변명해 본다. 7일 개봉. 12세 이상. “이것은 SF가 아니다” ‘우주전쟁’이라는 제목만으로 관객들이 이 영화를 SF로 단정짓지는 말아주시길 바란다. 나는 오히려 공포영화와 재난영화의 결합을 염두에 두었다.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CG)과 실사 촬영을 교묘히 조합해 아스팔트가 쩍쩍 갈라지고 교회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을 진짜같이 묘사했다. 이들 장면은 지난해 동남아시아를 덮친 지진해일(쓰나미)을 찍은 목격자들의 홈비디오 화면처럼 단순하지만 끔찍할 것이다. 트리포드가 쏘아댄 광선에 맞아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사람의 뼛가루를 뒤집어 쓴 레이의 얼굴에 맺히는 감정은 다른 무엇도 아닌 공포다. 살해 된 동료의 피를 뒤집어 쓴 공포영화 주인공들의 모습이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무참히 사람들을 죽이는 트리포드는 공포영화 속 무자비한 살인마나 귀신과 진배없다. “정의를 위한 전쟁? 헛소리일 뿐이다” 외계의 적에 맞서 싸우는 ‘인디펜던스 데이’(1996년) 류의 영화는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 80%와 성악설(性惡說)을 입증하는 사람들 20%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주전쟁’은 ‘지옥에서 인류는 선할 수 없다’는 명제를 입증하듯 인간의 아비규환을 드러낼 뿐이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80 대 20’의 공식을 입증하기 위해 다종다양한 인간들의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보지만 ‘우주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레이의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 레이의 눈으로 보자면 “저들과 맞서 싸우겠다”며 악악대는 아들 로비나 “저놈들의 약점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오길비(팀 로빈스)는 제정신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든 살아남는 것이다. “ET를 버렸냐고?” 혹자는 ‘우주전쟁’을 보며 ‘스필버그의 자기부정’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사실 1982년 내가 ‘ET’를 만들기 이전까지 지구인들에게 외계인이란 ‘지구를 침공하러 오는 문어 닮은 생물체’였을 뿐이다. 그런데 외계인이 지구인을 살육하는 ‘우주전쟁’이라니…. 그러나 영화를 유심히 보라. 소설에서는 화성이라고 못박았지만 영화에 우주선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트리포드가) 오래 전부터 지구에 묻혀 있었다”는 대사가 세 번이나 반복됐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트리포드나 트리포드를 조종하는 듯한 외계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애잔하기까지 한 마지막 장면…. 나는 아직 ET와 결별할 수 없다. :한마디 더: 영화 곳곳에 ‘ET’ ‘미지와의 조우’ ‘쥐라기 공원’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나의 전작들의 장면을 묻어두었다. ‘우주전쟁’이 못마땅하다면 숨은그림찾기의 재미라도 즐기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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