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기]영어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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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영어를 잘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에 왔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그 나이에 해당하는 미국아이들처럼 읽고 쓸 수 있게 교육시키는 열정적인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열정이 부족했고 또한 한국말 체계가 완전하게 자리 잡힌 후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서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영어학원을 보냈다. 1년 반 남짓 영어학원을 다니고 미국에 온 큰 아들(미국에서 3학년), 놀이학교(30%정도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이 포함되어 있었다)를 다닌 작은 아들(1학년)은 수업시간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도 하지 못해서 학교에 간지 두 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답답해한다. 첫 등교 전 아이들과 함께 학교가면서 이야기했다. “엄마가 아는 집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 울면서 왔대. 처음에는 무지 힘들 거야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선생님 말씀이 잘 이해되기 시작할 거야. 너희는 한국말 잘하잖아.” 그렇게 아이들을 보내놓고 말 한마디 못하고 바보된 것처럼 앉아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영어공부 제대로 시켜둘 걸 싶어 후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적응을 잘했다(물론 어려서이겠지만). “엄마, 재밌었는데 좀 힘들었어”, “그래도 아는 것도 있긴 했어”라고 말하면서 나를 안심시키며 아침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이 곳 교민들 자녀 중에서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 놀랐다. 일단 한국인인 이상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없어 한국어부터 제대로 시키고자 한다. 또 학교 입학 전에 보내는 프리스쿨(pre-school)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을 보내 영어 노출이 부족했던 것이 이유였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입학 전에 교육구에서 실시하는 CELDT(California English Language Development Test)라는 영어능력시험을 치른다. 우리 아이들이 시험 치러 갔을 때 같이 응시했던 미국에서 태어났던 6세 한국아이는 영어도 모르겠고 시험환경도 낯설다며 울면서 뛰쳐나와 나를 당황시켰다. 물론 학교 다니는 손위 형제자매가 있거나 미국 프리스쿨을 다녀서 학교 입학 전부터 영어를 잘했던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조차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미국인으로부터 따로 글쓰기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무래도 미국인에 비해 사용하는 어휘와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에 사는 아이들에게도 이렇게 어려운 영어인데 하물며 한국에서 영어하기란 얼마나 힘든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국에서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려는 부모에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수능 정도의 영어는 끝내고 토플정도 수준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놓칠 수 없는 수학도 중요하고, 악기도 배워야 하고 운동 한 가지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아이라면 당연히 어려운 과제도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속으로 끙끙 앓고 있으면서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엄마 매니저의 관리에 의해 공부를 계속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지친 영혼은 어떻게 치유되어야 하는지,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비용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서울대 의대 학생들의 집단 컨닝 사건, 미국의 명문 아이비리그 한국인 입학생 10명 중 4.4 명이 학업 도중 중퇴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은 더해 간다. 그대로 두면 정말 잘 자랄 풀들을 미리 쭉 잡아당겨버려 시들게 하거나 다른 곳에 잘못 심어 말라죽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보다 상위학교에 진학할수록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스스로 좋아서 한 공부일 때 그 찬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는 건지 안타깝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일본계 미국인 1명 포함해서 3명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기사를 봤다. 부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우리는 수능 탐구과목 중 비교적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는 화학, 생물에 몰려 물리를 선택하지 않은 학생이 물리학과에 입학하기도 하는 현실인데. ‘영어 광풍’이 부는 한국에서 앞서 말한 미국 아이들과 같은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임에도 영어숙제에만 투자하는 시간이 하루 3시간이었다. 그렇게 해서 뛰어난 영어구사능력을 갖추게 되는 건 좋지만 그 영어로 표현할 자기만의 시간이 없다면, 껍데기 영어는 훌륭한데 그 안 내용이 어설프다면 훨씬 슬픈 일이다. 아이에게 미국인과 비슷한 수준의 영어를 하기 위해서 쏟아 부은 그 시간에 아이에게 필요한 다른 것을 했더라면 더 큰 재능을 꽃 피울 수 있는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렇게 떠들면서 나 스스로 부끄러운 점은 없나 돌아보게 된다. 일단 내 새끼들이 뭘 잘하는지 한 번 더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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