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투더 1969②]아폴로 11호가 남긴 잊혀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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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7월 아폴로 11호의 달 정복은 지역과 인종, 이념을 떠나 전 세계를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대사건이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류 최초로 달에 상륙한지 40년이 지난 지금 본지는 그 때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 시기에 나온 신문(新聞)을 살펴봤다. 당시 일반 대중들이 달 탐사에 보였던 관심과 환호는 언론이 얼마나 이를 비중 있게 다뤘는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1969년 6월 18일부터 8월 18일까지 동아일보에 보도된 아폴로 11호 관련 기사를 근거로 ‘백투더(Back to the) 1969’ 시리즈를 마련했다. 제1편 21일 2시 56분 20초 “인간 달에 섰다” 제2편 아폴로 11호가 남긴 잊혀진 이야기들 제3편 그해 여름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1969년 7월 16일. 이날은 전세계 모든 사람에게 축제의 시간이었을까.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린 케이프케네디 발사기지 한 켠에선 달 탐사계획을 반대하는 규탄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흑인 인권단체들이 몇 날 며칠을 이곳까지 행진하며 그렇게 목놓아 소리쳤던 주장은 무엇이었을까. 한편 뉴욕타임스는 발사 다음날인 17일 1920년에 있었던 일에 대해 공식 사과하는 정정기사를 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49년 전 과연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일까. 또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정확히 예언한 인도의 점술가 다디 발사라는 아폴로 11호 발사에 앞서 또 한 차례 예언을 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의 예언은 과연 제대로 들어 맞았을까. 정체불명 蘇 루나 15호 발사…아폴로 앞서 달 지질표본 채취 임무 1969년 여름 아폴로 11호는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있는 소재 중 하나는 이 무렵 느닷없이 등장한 소련의 무인 달 착륙선 ‘루나 15호’였다. 끝까지 미스테리한 존재로 아폴로 11호 주변을 맴돌았던 루나 15호는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앨드린이 달을 밟은 21일까지 극적인 긴장감을 높여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 시기 동아일보도 여러 차례 루나 15호에 관해 비중있게 보도했다. 냉전의 상징인 미국과 소련, 두 우주 강국의 첨예한 경쟁 구도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흥미 요소를 적극 끌어들인 것이다. 7월 3일자 2면 ‘蘇, 무인달착륙선 계획’은 루나 15호의 존재를 알리는 첫 기사였다. 이 기사는 “소련은 오는 10일 미국의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의 발사예정을 일주일 앞질러 무인 달 탐색선을 발사, 달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지구로 회송할 계획이라고 2일 발표했다”며 “만약 이번 발사가 성공한다면 미국의 아폴로 11호 발사의 선전 효과를 크게 감소시키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루나 15호가 발사된 다음날인 14일부터 19일까지는 거의 매일 1면에 루나 15호에 관한 소식이 비중있게 다뤄졌다. 14일자 1면 ‘蘇, 루나 15호 발사…16일 도착 지질표본 갖고 귀환설’이란 기사는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소련은 13일 미국의 아폴로 11호 달착륙우주선 발사를 3일 앞두고 로봇에 의한 달 표면 지질 표본 채취와 지구 귀환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인달우주선 ‘루나 15호’를 발사했다. 루나 15호는 13일 오전 5시 55분에 발사되어 예정된 항로로 달에 접근하고 있으며 지상과 우주선 사이에 만족스러운 무선통신 연락이 이루어졌다고 모스크바 방송이 보도했다. 과학 전문가들은 루나 15호가 달에 착륙하여 달 표면 지질 표본을 채취해 가지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소련 우주과학자들은 소련의 달 탐사계획은 본래 미국의 아폴로 계획처럼 인간을 달에 올려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동장치’로 달 성분의 과학 조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주는 셈이다.“ 같은 면 또 다른 기사는 아폴로 11호와 루나 15호가 달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기사는 “서독의 보쿰연구소 하인츠 카민스키 소장은 무인 달 우주선 루나 15호가 만약 달의 밝은 면에 착륙한다면, 미국이 16일 발사 예정인 아폴로 11호가 머물 예정 장소에 착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달 정복 효과 훼방 목적?…루나 15호 달 연착륙 실패 루나 15호의 진짜 의도에 대해서는 당시 명확히 파악되지 못한 채 갖가지 설왕설래를 남겼다. 15일자 1면 ‘루나15 달 향해 항진’이란 기사는 “소련 무인달우주선 루나 15호는 14일 달까지 거리의 거의 중간지점을 통과했다”며 “16일 아폴로 11호가 발사될 무렵 달에 도착할 것으로 보이지만 소련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전했다. 같은 날 2면에서는 루나 15호가 발사된 배경에 대한 분석 기사가 실렸다. ‘蘇 무인우주선 루나 15호의 임무’라는 기사는 “달에 착륙한 뒤 암석을 갖고 지구로 돌아와 미국의 유인 달 정복이 갖는 충격적인 성과를 반감(半減)하려는 시도라는 추측이 일고 있다”고 배경을 짚었다. “우주개발의 초기에서부터 소련은 달 로케트 분야에서도 줄곧 미국을 앞질러왔다. 1959년 10월 달에 명중한 루나 2호를 비롯해 달 뒷면 촬영 성공 등을 거쳐 1968년 9월 존드 5호의 무인 달궤도 비행으로 언제나 선수를 쳐서 미국에 앞서 유인 달 정복을 이룩할 기세였다.(중략) 루나 15호는 아폴로 11호가 발사되는 16일 달에 도달한다. 그 정체는 무엇일까. 21일 새벽으로 다가선 미국의 달 정복을 앞두고 가장 알맞은 시기에 변칙적으로 이 경쟁에 뛰어든 루나 15호는 달 정복에 또 다른 화제를 던져주고 있다.“ 아폴로 11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다음날인 17일 루나 15호는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18일자 1면 ‘루나 달 궤도진입…도착 뒤 흙 파 돌아올 듯’이란 기사는 이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소련 관영 타스 통신은 17일 오후 7시(한국시간) 루나 15호가 달 궤도에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의 과학 소식통들은 루나 15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때로부터 24시간 안에 달 표면에 착륙해 달 표토 표면을 채취한 다음 아폴로 11호보다 이틀 먼저 지구로 귀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조드렐뱅크 천문관측소 로벨 소장은 ‘루나 15호가 달 착륙에 앞서 방향조정 기술과 달 궤도 직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루나 15호가 방대한 양의 정보와 포괄적인 자료를 보내오고 있으나 아직 사진은 전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19일자 1면에 실린 ‘루나, 달 비행 계속’이란 기사는 “비밀에 싸여있는 소련의 루나 15호는 지구와의 교신을 계속하면서도 앞으로의 계획을 전혀 밝히지 않은 채 달 상공 96km의 궤도를 계속 돌고 있다”며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할 때 이를 감시 관측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달 궤도를 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한 21일에도 루나 15호에 관한 소식은 이어졌다. ‘루나 15 곧 달 착륙’이란 기사는 “비밀에 싸인 채 4일째 달 궤도를 돌고 있는 소련의 루나 15호가 20일 38번째 달 궤도 비행을 마친 후 돌연 두 번이나 궤도를 수정, 아폴로 11호의 착륙지 근처 달 표면 16km 상공까지 내려갔다”며 “곧 달에 착륙하거나 아폴로 11호의 임무를 정찰하게 될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루나 15호의 조연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다음날인 22일자 2면에서는 루나 15호가 21일 달에 연착륙하는데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기사는 “소련 관영 타스 통신이 ‘루나 15호의 우주탐색 계획이 끝났다’고 발표했는데 달 탐색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임무 수행에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며 “영국 조드렐뱅크 천문관측소의 과학자들도 ‘루나 15호가 달 암석 견본을 채취하려던 임무에 이미 실패한듯 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편에서는 美·蘇 우호 분위기 연출…우주정거장 공동 탑승 언급 동서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최강국 미국과 소련은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우호적인 분위기도 연출했다. 아폴로 11호 발사를 며칠 앞두고 미국 아폴로 8호 우주인 프랭크 보맨 대령이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 우주인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기도 했다. 4일자 2면 ‘내년 우주정차장엔 미국 소련인 공동 승선’과 11일자 1면 ‘달 착륙 성공 빌어’, 25일자 2면 ‘소련, 회수 광경 TV…닉슨에 축전도’ 등의 기사들은 아래와 같이 분위기를 전했다. “미 우주인 프랭크 보맨은 3일 미국이 오는 1970년대 중반기에 거대한 우주정차장을 발사할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고 밝히고 ‘이 계획에서 미국과 소련 우주인들이 공동 승선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련 방문의 일환으로 레닌그라드에 들른 보맨은 이날 비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자기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이 계획의 상세한 내용에 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소련연방최고회의의장 포드고르니는 9일 이곳을 방문중인 미국 우주비행사 프랭크 보맨 대령을 만나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의 성공을 빈다고 말했다.” “소련의 모스크바 TV 방송국은 24일 밤 미국의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지구 귀환 광경을 소련 국민들에게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닉슨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냈다.” 1969년 미국과 소련의 우주탐사 전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닉슨 대통령은 이를 자축하겠다는 듯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25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17일자 ‘닉슨, 달 착륙 21일 공휴일 선포’라는 기사는 “닉슨 미국 대통령은 16일 아폴로 11호의 두 우주인이 인류사상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딛게 될 오는 21일을 경축을 위한 공휴일로 선포했다”며 “이 날을 ‘국민참여의 날’로써 공휴일로 선포하고 각 주 및 시 당국에 이에 호응할 것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흑인 단체, 발사기지까지 빈민(貧民) 행진…뉴욕타임스, “49년전 사설 사과한다” 하지만 미국내에서는 이처럼 박수와 환호로 넘쳐나는 축제 분위기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편에서는 달 탐사에 쏟아부은 천문학적 비용에 대해 우려하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26일자 4면 ‘6조원으로 쌓은 과학의 피라밋’이란 기사는 달 탐사 계획에 대해 “미국이 8년 동안 240억 달러(약 6조원)를 들이고, 2만개 민간 회사에 소속된 40만명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현대판 피라밋”이라고 전했다. 비판 여론이 조직적인 행동으로 나타난 건 흑인 인권운동가들의 항의 시위였다. 12일자 2면 ‘발사에 관객 100만명, 흑인 민생고 항의도’라는 기사는 “공항에 모여든 자동차의 물결 가운데는 흑인들의 민생고를 외면한 채 값비싼 예산을 들여 달로 가는 정부의 처사에 항의하는 흑인 민권단체의 노새 마차도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15일자 2면 ‘지상의 빈곤 항의, 흑인들 빈민행진’이란 기사는 “케이프케네디(아폴로 11호 발사 장소)에 몰려드는 사람들 가운데는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를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항의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며 “암살된 마틴 루터 킹 박사의 뜻을 받들어 ‘빈민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애버나디 목사의 영도 하의 흑인들은 발사 시간에 맞추어 우주센터까지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으로 축제 분위기가 최고조였던 22일에도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무엇 때문에 우주 탐색을 서둘러야 하는냐는 항의의 소리는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지만 아폴로 11호의 달 탐색이 성공한 직후에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흑인 시민에게도 경제적 정치적 평등권을 보장하라는 민권 투쟁의 지도자인 찰스 에버스 씨는 ‘어린이들의 식량 부족을 희생 삼아 아폴로 달 탐사를 계획할 필요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흑인 시인 준 조르단 여사는 ‘공휴일이 아니라 성스러운 날로 정했어야 했다. 여러분들은 헐벗고 울부짖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담에서 들려오는 것을 들어봤습니까’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이와 유사한 비판여론을 보였다. 16일자 2면의 한 기사는 프랑스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프랑스 국민의 50%는 달 정복이 막대한 비용을 정당화시킬 만큼 가치있는 일이 아니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황 바오로 6세도 미국의 달 착륙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천문학적 비용 경쟁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내비쳤다. 21일자 2면에 실린 한 기사는 “지상의 전쟁과 기아 문제가 외계의 정복 과정에서 소외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우주를 정복하기 위한 인간 지혜의 승리인 이 역사적인 날, 우리들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과 우리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교황 바오로 6세의 반응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도 아폴로 11호의 달 정복에 마냥 기뻐하지 못했던 이들 중 하나였다.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고다드 박사가 1919년 ‘극한 고도에 도달하는 기술’이란 논문에서 로켓이 달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한 내용을 두고 사설을 통해 조롱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1920년 1월 13일자 사설에서 “고교생 수준 이하의 지식으로 논문을 썼다”며 “공기가 없는 진공에서는 로켓의 우주비행은 불가능하다”고 혹평한 바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아폴로 11호가 우주로 발사된 다음날인 7월 17일자 ‘A Correction’이라는 기사를 통해 “오늘날 로켓 추진이 대기에서 뿐만 아니라 진공상태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고다드 박사의 주장을 비난한 실수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반세기만에 정정보도를 내야만 했다. NASA 국장, “1980년대에 화성 갔다가 금성 돌아 지구로 귀환” 이처럼 과거에는 과학자의 공상과학소설 같은 주장들이 때로는 한낱 황당한 이야기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인간이 달 위를 걷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 1969년 당시에는 더 이상 상상하지 못할 일이 없는 듯 했다. 대표적으로 미 항공우주국(NASA) 토마슨 페인 국장은 전문가로서 여러 차례 장밋빛 미래를 예견하기도 했다. 7월 19일자 2면에는 ‘누구든지 달에 갈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페인 국장의 주장을 실었다. “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과 지구를 왕복하는 장거리 원자력 로켓의 정기편이 생기면 달 여행 운임은 1984년 무렵 1만 달러 수준이 될 것이다. 이는 1960년대 처음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해 설계하고 제작한 아폴로 우주선의 도전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은 못된다. 사실 충분한 현금만 확보되면 NASA는 미국의 각종 산업이나 대학과 협력해서 이 임무를 완수하게 될 것이다. 이 시기 달 표면에는 지상 기지가 건설될 것이다. 어떤 기지가 되는냐는 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어떤 자원이 발견되느냐에 달린 것이어서 아직 확신을 갖고 예언할 수는 없다. 세월이 지나면 기술의 진보는 태양 에너지나 원자력으로 달의 자원에서 건설 자재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달 표면 기지는 돔으로 만든 훌륭한 도시로 발전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중략)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에 있을 때보다 6배나 강한 체력을 갖게 되고 자기 자신의 근육의 힘으로 문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운동선수처럼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활동분야도 열릴 것이다.(중략) 아폴로 11호의 진정한 의미는 인류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거기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한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페인 국장은 8월 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도 또 한번 미래를 예견하는 연설을 했다. 8월 4일자 2면 ‘82년 8월 9일 화성에 인간 착륙’이란 기사는 아래와 같이 연설 내용을 요약했다. “NASA의 토마스 페인 국장은 1일 장차의 우주개발 전망을 설명하면서 예상되는 스케줄을 제시하고, 핵추진 유인우주선이 1981년 12월 지구를 떠나 1982년 8월 9일 화성에 착륙했다가 1983년에 금성을 돌아 그해 8월 14일 지구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1981년 11월 12일에 지구와 화성은 우주여행에 가장 편리한 우주의 좌표에 머물게 된다고 설명했다.” 닉슨, “2000년 다른 행성에 인간 살 것”…케네디 업적 가로챈다며 곱지않은 시선도 이같은 장밋빛 미래 예언에 닉슨 대통령도 가세했다. 그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다음날인 7월 22일 “2000년까지는 지구의 인간들이 생명체가 있는 새로운 세계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 화성일지 금성일지 또는 그 밖에 어떤 천체일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3일자 1면에 게재된 이 기사는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1000여 명의 외국 고교생에게 이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다면서 모든 국가가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에 협조하도록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미국의 우주개발을 적극 지지하는 듯 보이는 닉슨에 대해 일부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했다. 8월 7일자 2면 ‘닉슨, 아폴로 영광 독점’ ‘선거공약에선 때리더니 케네디 업적 가로채’라는 기사는 아래와 같이 뒷이야기를 전했다. “대통령 선거 때는 물론 달 정복 계획을 내려치는데 늘 열을 올리던 닉슨 대통령이 아폴로 11호 성공의 추진력을 등에 업은 채 루마니아를 방문하는 성과까지 이루게 됐다. (중략) 1970년까지 달 정복을 미국의 국책 과제로 결정한(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에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NASA 측은 우주인이 달에 착륙하는 즉시 케네디 대통령의 5월 25일자 연설을 낭독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착륙선을 ‘더 존 F. 케네디’로 명명하려던 결정마저 뒤엎고 ‘이글(독수리)’로 부르라고 지시한 닉슨 대통령은 케네디 연설문 낭독에도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닉슨 대통령이 달에 착륙한 우주인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요청했을 때 NASA 관리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대통령과 우주인의 대화 시간을 2분 30초로 제한한 이면에는 그런 비화도 있다.“ 예언가들, 아폴로 실패 예언…“달 착륙하면 외계인 보복할수도” 미래에 대한 예측은 꼭 전문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7월 11일자 4면에는 “인디언 1만 5000여 명이 몰려살고 있는 캐나다 브랜포드 부근의 롱하우스 촌장 조셉 로간 씨는 아폴로 11호의 우주인들이 이번 달 착륙 시도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짤막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정확히 예언해 이름이 알려진 인도 점술가 다디 발사라도 달 탐사에 앞서 예언을 했다. 그는 이전에도 영국 윈스턴 처칠, 인도의 자하라할 네루,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에 성공한 유리 가가린의 죽음,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실각을 예언한 바 있다. 그는 6월 20일 마치 루나 15호의 출현을 예견하는 듯 “미국의 달 착륙이 연기되고 소련이 먼저 달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결과는 틀렸다. 그는 이 예언을 하면서 닉슨 대통령, 월남전,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오나시스, 3차세계대전 등에 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지만 모두 틀린 예언이었다. 그가 단 하나 맞힌 건 “소련, 동유럽 등 공산권이 1980년대에 마침내 내부 분열로 와해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미국의 달 정복이 세계적인 이슈였다는 점을 반영하는 듯 이 무렵에는 세계 곳곳에서 아폴로 11호를 둘러싼 황당한 주장들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신문에 소개된 여러 가십성 뉴스 중 ‘인간이 달에 착륙하면 외계인이 보복할 것’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7월 5일자 2면에 게재된 이 기사는 “정체불명의 비행물체(UFO)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단체의 거두인 티모시 그린 베크린 씨는 만약 인간이 달을 식민지화하려 든다면 외계인들은 지구의 인간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기 위해 달을 기지로 사용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UFO에 관한 수 권의 책을 저술한 한 전문가는 이미 달 위에 설치된 외계인 조직체와 통신 연락을 해온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부에서 발행한 달소유 부동산증서를 갖고 ‘달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등장했다. 칠레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 남자는 “동서남북으로 직경 1만 km에 달하는 달의 지역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며 “칠레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모두 나의 달 소유권을 존중해야 하고, 그것은 국제 사법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7월 16일자 2면에서는 그의 주장을 상세히 소개했다. “변호사이자 시인인 헤나로 카하르도 베라 씨는 칠레 정부 부동산국이 발행한 부동산증서를 증거물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미국 아폴로 11호의 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하면 닐 암스트롱 대령에게 ‘난 귀하가 나의 소유지에 도착하여 기쁘다’는 전문까지 보내 달 소유자 행세를 톡톡히 할 작정으로 있다. 베라 씨가 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이야기는 우주 탐색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16년 전인 1953년에 소급한다. 칠레 법률은 누구든 주인이 없는 재물에 대해선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나는 이 부동산소유권 주장론을 시험해 보려고 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서류를 작성, 이 사실을 칠레 신문에 연 3일간 광고하여 나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규정에 따라 30일간 기다렸다’고 베라 씨는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나 30일이 지나도록 그 외에 달의 소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안 나타나 칠레 남부 탈카 시 부동산국은 1953년 10월에 달 소유 부동산증서를 발급하는 동시에 세금으로써 1달러에 해당하는 액수까지 부과했다.” 7월 16일자 2면에서는 닉슨 대통령에게 10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주장하는 네로 갈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 화가를 소개했다. 그는 “미국 NASA가 내가 그린 우주비행체의 모양을 그대로 모방해서 아폴로 11호의 형태를 만들었다”며 “그림을 무단 도용한 책임을 물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상대로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발이 달을 더럽혀도”…“민족주의 청산 기회” 인류 사상 최초로 인간이 달을 밟은 광경을 목격한 예술가들은 당시 어떤 상념에 빠졌을까. 동아일보는 7월 14일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영화배우 가수 시인 소설가 등 예술가들의 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안달루시아의 개’ ‘황금시대’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달에서 그들이 무엇을 발견하든 나는 관심없다”면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인간의 동면(冬眠)에 관한 연구인데 아폴로 11호가 그 연구를 촉진시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50~1960년대 세계적인 여배우였던 소피아 로렌은 “비록 그것은 거창한 사업이기는 하지만 그처럼 엄청난 돈을 소비해야할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며 “나의 세대에는 달로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내 아들 카를로는 주말에 마음대로 달로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동시대 최고의 섹시 심볼로 활동하던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도 소감을 밝혔다. 우리에게는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방해 물의를 일으킨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로케트를 타고 달에 갈 생각은 없다”면서 “나는 이 지구도 아직 잘 모른다”는 간략한 말을 남겼다. 샹송 가수이면서 할리우드 스타 배우로 활약한 프랑스의 모리스 슈발리에는 “인간이 달에 착륙함으로써 달의 빛은 꺼진다”며 “그것은 달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인들에게 극적인 손실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착잡해했다. 장편소설 ‘대지(The Good Earth)’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펄 벅은 “인간은 끝없이 미지를 밝히려는 동물이다. 만일 인간이 지구상에서 지구 이상의 것을 찾지 않는 날이 오면 그때에는 지구도 죽어버릴 것이다. 인간의 발이 달을 더렵혀도 나는 언제나 달과 더불어 공상할 것이다”라는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7월 19일자 1면에는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조지프 토인비의 글이 실렸다. 토인비는 대석학다운 시각으로 아폴로 11호의 달 정복 계획이 갖는 의미를 차분히 짚어냈다. 그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민족주의를 꼽으며,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가져다 줄 인류 전체의 연대감으로 민족주의를 넘어서자는 주장을 펼쳤다. “아폴로의 달 탐사는 ‘민족주의’라는 시대착오적인 고정관념을 청산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달 탐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화되려면 전쟁 폐기와 관련된 경우라야 한다. 인류의 대다수가 아직도 절망적인 정도의 의식주에 쪼들리고 있다. 만약 지금까지 지구에서 습성화된 버릇대로 달 탐사를 생각한다면, 훗날 달 탐사 계획은 피라미드나 앙코르와트, 루이 14세의 베르샤유 궁전과 같은 ‘낭비’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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