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태양’ 아래서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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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뒤로 숨었던 태양이 막 나오려는 순간을 포착했다. 태양 표면의 불기둥인 홍염이 오른쪽에 보인다. 달이 태양을 거의 다 가릴 즈음, 사람들의 환호성이 꿈에서처럼 저 멀리 아련하게 들렸다. 나는 몽롱한 상태로 그 꿈속으로 걸어가는 듯 했다. 이윽고 하늘에 ‘검은 태양’이 보이는 순간 은백색 코로나의 광채가 주변을 감싸 안았다. 가까운 곳에는 금성이 찬란히 빛났으며 지평선에는 360°로 주황색 노을이 아스라이 펼쳐졌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꿈이다…. 우주 속으로 걸어가는 기분이 이럴까.’ 지구 지름의 109배나 되는 태양과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 지구라는 요람에 생명을 움트게 하고,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주춧돌인 두 천체가 하늘에서 완벽하게 겹치는 현상, 개기일식. 지난 8월 1일 일어난 개기일식은 캐나다 북부에서 시작해 1시간 30분 동안 그린란드, 시베리아 서부, 몽골을 거쳐 중국 중부에서 차례로 관측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분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지만, 해질 무렵 일식이 시작돼 약 20분밖에 관측할 수 없었다. 우주의 조화가 만드는 지상 최대의 이벤트를 직접 보기 위해 일식원정대가 꾸려졌다. 필자를 비롯해 로봇 ‘휴보’로 유명한 ‘일식 마니아’ KAIST 오준호 교수와 천체사진가 김상구 씨, 그리고 KBS 촬영팀과 일반 참관객 2명까지 총 11명이 참여했다. 모두들 이번 일식을 위해 수개월을 준비해왔다. 이번 일식 원정에서 최적의 관측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연간 강수량과 청정일수, 평균 구름량을 고려했다. 한국에서 일주일에 한번 직항로가 개설된 러시아의 노브르스크로 갈까도 했지만 주변 호수에서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데다 고도도 높지 않아 중국의 신장성 이오현의 서안지역인 웨이즈샤로 정했다. 평균 구름량이 적고 사막기후인 동시에 고원지대인 웨이즈샤는 중국 천문학회가 이번 일식의 최적 관측장소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일식은 개기식 지속시간이 2분이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여행을 준비하는 기간 내내 적지 않은 부담에 시달렸다. 날씨가 흐려 아예 일식을 보지 못하면 어쩌나. 짧은 순간 촬영타이밍을 놓치지는 않을까. 30년 가까이 천체사진을 찍어오면서 이번 여행처럼 긴장했던 적은 없었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북경에서 중국 국내선을 갈아탄 뒤 4시간 반을 날아 도착한 곳은 중국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중심도시 우루무치였다. 우루무치는 과거 동서양을 이어주는 실크로드의 거점도시였다. 우루무치에서 1박을 한 다음날 120여km를 이동해 아시아 최대 산맥 중 하나인 천산(텐산)에 도착했다. 천산산맥은 파미얼 고원에서 시작돼 두 줄기로 나뉘는데 한 줄기가 굽이굽이 뻗는다. 총길이가 1760km에 이르는 천산은 여름이면 약 6890 개의 빙하가 녹아 천산 남북의 분지와 녹주를 촉촉이 적신다.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로 이뤄진 ‘천지’ 호수를 관람한 뒤 하자크 유목민 마을에서 하루를 묵었다. 저녁식사로 양 꼬치구이와 수육을 대접받았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마을 사람들의 배려로 말타기와 양몰이 등 여러 가지를 체험했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밤하늘이었다. 낮 동안 내내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던 지라 관측을 포기했었는데, 새벽에 잠깐 잠이 깬 김상구 씨가 날이 갠 사실을 확인하고 모두를 깨웠다. 잠결에 일어나 바라본 하늘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장관이었다. 서울에서는 쌍안경으로도 보기 힘든 안드로메다은하의 암흑대와 북아메리카성운, 석호성운, 독수리성운, 삼렬성운이 맨눈으로 보였다. 쏟아질 듯 별빛으로 ‘눈 호강’을 한 다음날 원정대는 천산을 떠나 일식관측의 베이스캠프 도시인 하미로 출발했다. 천지에서 하미까지는 550km에 이르는 울퉁불퉁한 길을 이동해야 했는데, 만년설이 덮인 천산산맥을 오른편에 두고 황량한 사막과 드넓은 초원이 반복해서 나타났다. 지구 태초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간직한 풍경은 지상 최대의 천체쇼를 보러가는 원정대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루 종일 이동해서 도착한 하미는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중국 중앙정부의 영향력이 잘 유지되는 가운데 여러 이민족이 잘 어울려 살고 있었다. 실크로드의 중간 기점답게 위구르족, 우즈베크족, 하자흐족 등 다양한 민족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들의 생김새를 보는 일도 흥미로웠지만, 다음날 있을 일식을 성공적으로 사진에 담기 위해 망원경과 카메라 그리고 전원장치를 충분히 점검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펼쳐져 모두들 성공적인 일식촬영과 관측을 기대했다. 관측지까지는 130여km로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3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세계 곳곳에서 관측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잡고 여유 있게 촬영 준비를 하기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오후 1시 30분쯤 관측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러 나라의 관측자들이 촬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바닥은 가는 모래와 현무암 조각으로 푹신하게 덮여 있는, 드문드문 사막 식물이 보이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마치 화성의 고원지대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은 일식과 묘하게 어울렸다. 작렬하는 태양빛을 가려줄 곳이 전혀 없는 환경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은 38℃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잠시 짬을 내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일본 ‘호시나비’(별길잡이) 잡지사에서 모집한 관측일행 50여명이 촬영 준비를 마치고 일식을 기다리고 있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관측팀도 분주히 촬영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별지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느껴지는 친근함은 자연스레 서로의 장비와 관측 경험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그 중에는 일식이 일어날 때마다 세계 각처의 관측지에서 만나는 우정을 뽐내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각국 언어로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개기일식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사물이 어둠 속에 빠져들었다. 손은 부지런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지만 눈은 아득히 펼쳐진 태양에 고정됐다. 태양이 달 뒤로 완전히 숨었다가 다시 빠져나오며 2차 다이아몬드링을 만들 무렵엔 모두가 말을 잊고 말았다. 조용히 키스를 하는 노부부도 있었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으며, 우는 사람도 있었다. 태양이 달 뒤로 완전히 숨었다 다시 나타난 그 짧은 1분 57초는 30여 년의 천체 관측 경험을 무색케 할 정도로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숨이 다 할 때까지 지구 어디라도 따라가 일식을 느끼고 또 사진으로 남기겠다고 다짐했다. 내 사진을 본 사람이 개기일식이 일어난 곳에서의 감동을 10% 라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황인준 천체사진가 일본 근기대(近畿大)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링컨대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현재 천문기자재 회사 아스트로드림테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어린 시절 앞마당에 펴놓은 멍석에 누워 바라봤던 별빛에 매료된 뒤 30년 넘게 별을 봐 왔다. 최근 충남 아산시에 호빔천문대라는 개인천문대를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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