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게 배운다] 박쥐와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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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짐승과 들짐승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을 때 박쥐는 기회를 보다가 항상 유리한 편에 섰다. 날짐승이 유리하면 날개를 내세워 새인 척하고, 들짐승이 유리하면 얼굴을 내세워 쥐인 척했다. 평화가 찾아오자 박쥐는 동물 세계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우화는 박쥐를 유리한 쪽에만 붙는 간사한 동물이라며 이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런데 박쥐와 같은 모습이 식물에게도 있다. 주인공은 대나무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 중에서 ‘죽(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나모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초장을 보면 윤선도도 대나무가 풀인지 나무인지 애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풀과 나무는 어떻게 구별할까? 풀은 줄기에 부름켜가 없기 때문에 줄기가 계속 굵어지지 않고, 겨울이면 땅 위 부분이 말라죽는다. 그래서 풀에는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다. 한해살이풀은 뿌리까지 모두 죽어 식물체로서의 삶을 마감한다. 하지만 나무는 줄기와 뿌리에 부름켜가 있어 계속 굵어지고, 세포벽이 굳어져서 줄기가 단단해진다. 따라서 추운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1년이 지날 때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줄기 속에 둥근 나이테가 생긴다. 또 풀은 한 번 꽃을 피우고 나면 씨를 남기고 죽지만, 나무는 여러 해를 살면서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대나무는 풀인지 나무인지 구별하기가 애매하다. 이름에 나무가 있으니까 나무라고 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대나무는 키가 크고 줄기가 단단해진다는 점은 나무와 같다. 그러나 해마다 줄기가 굵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번 꽃을 피우고 죽는 점은 풀과 같다. 종류마다 다르지만 대나무류는 수십 년에 한 번 꽃을 피우고 일제히 말라죽는다. 또 대나무는 벼나 옥수수처럼 수염뿌리를 가지는 벼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이처럼 풀과 나무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대나무는 ‘식물계의 박쥐’ 같은 존재다. 우화에서는 박쥐를 기회주의자로 보았지만, 하늘과 땅이라는 두 가지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대나무 또한 나무처럼 오래 살며 풀처럼 번식하는 생존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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